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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용서받지 못할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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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23-06-23 09:51 조회2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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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의 ‘용서받지 못할 죄’

청와대 관저에서 사용하던 가구·집기 사라지고
前 국회 과방위원장은 올 해외 시찰 예산 다 써버려
공공 기관 직원 250명, 보조금 받아 ‘태양광 장사’
베네치아 공화국이 천 년 동안 번성한 비결은
공직자의 예산 낭비를 ‘대죄’로 엄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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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조국 전 장관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올린 사진 한 장에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재밌는 댓글을 달았다.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청와대에서 가져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봉황 문양 술병이 식탁에 놓인 걸 보고 한 말이다. 이런 댓글도 있었다. “문이 찬 시계를 보니 자기 이름이 들어간 시계네요. … 스스로 날마다 잊히지 않을 듯싶습니다.”

잊어라 해놓고 계속 나타나는 심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횡령은 다른 문제다. 소위 ‘오피스 빌런’이 소소하게 커피믹스나 복사 용지를 빼돌릴 때도 숨어서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청와대 물품을 가지고 와서 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는 건 ①아직도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②애초에 횡령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증거다.

횡령 규모도 결코 소소하지 않다. 청와대 관저에서 사용하던 가구와 집기류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지난해 4월 3주에 걸쳐 양산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외국 유명 화가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으나, 어떤 물건이 양산으로 갔는지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보통 하루면 끝나는 이사에 3주가 걸릴 정도로 많은 이삿짐을 모두 재임 시 받은 월급으로 샀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상 국가 예산으로 구입한 모든 것은 물품관리법 적용 대상이다. 여기에는 가구와 집기, 선물 등이 포함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풍산개까지 대통령기록물로 포함해 양육비까지 챙겼다(가 파양했다). 횡령도 문제지만, 국가기록물 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여기까지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이제야 드러나는 지난 정부의 도덕적 해이와 몰염치와 예산 독식과 낭비는 그 규모와 방법이 혀를 찰 정도다. 지난해 모 부처에 새로 부임한 차관급 공직자는 문 정부가 그해 연구 용역 등의 예산을 이미 모두 집행한 것을 보고 “지독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정상적 조직이라면 후임이 사용할 몫의 예산은 남겨놓는 것이 상식이다. 이달 초에는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상임위원장 교체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도 올해 과방위에 배정된 해외 시찰 경비 예산 약 5000만원을 사실상 전부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쓸 돈과 자리만 생기면 득달같이 모두 쓰는 것이 지난 정부 인사들의 상식인 모양이다. 이 정도면 각종 인사 알박기나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버티기는 애교 수준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식을 채용해 대를 이어 세금으로 먹고살려다 적발되었고,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연일 정쟁에 매달리며 방탄 국회를 전전하는 국회 역시 나랏돈을 낭비하는 큰 구멍이다. 문 정부는 연간 2조원에 가까운 민간 단체 보조금을 늘렸는데, 이렇게 지원한 각종 보조금은 특정 정파의 정치 운동에 사용되는 등 부정하게 줄줄 새어 나갔다. 최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보조금 314억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282억원이 부정 사용되었다. 드러난 것만 그 정도다.

지난 정부가 밀어붙인 탈원전과 태양광 사업의 수혜 구조는 정권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드러날 대표적 이권 카르텔이었다. 역시 최근 감사원은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를 통해 공공기관 8곳 임직원 250여 명이 본인이나 가족 이름으로 태양광 사업을 하며 보조금을 나눠 가진 것으로 확인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에너지 정책을 뿌리부터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거기에 들러붙어 뒷돈과 자리를 챙겼다. 그리고 잘못된 정책에 따른 부담 수십조 원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겼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패악이 아닐 수 없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한 소설에서 소금과 생선밖에 없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천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로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를 들었다. ‘용서받지 못할 죄’로 번역되는 이 라틴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엄벌한 ‘대죄’를 뜻한다. 그 죄는 첫째 공직자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 둘째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적영역의 생산 체계가 자유롭고 원활해야 하고, 공적 영역에서는 그 이윤을 공정하게 사용하고 분배해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정치 경제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공직자의 위선과 무능, 기업인의 나태와 방관을 큰 죄로 묘사한다.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은 이런 ‘대죄’를 하느님의 은혜에서 분리된 ‘죽음에 이르는 죄’라고 부른다. 대죄의 성립 요건으로 첫째 죄의 사안이 중대하고, 둘째 죄를 짓는 자가 그걸 알고 있으며, 셋째 자신의 완전한 의지에 따라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분류에 따르면 세금을 낭비한 각급 공직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몰랐을 리 없고, 누구의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었으며, 제정신으로 저질렀을 테니 ‘용서받지 못할 죄’임이 분명하다.

성경이 다시 이르시길 ‘죽음에 이르는 큰 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사할 수 있다고 했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용서는 그렇게 구하면 된다. 그러나 현대 법치 사회에서는 사무실 용품을 빼돌리는 ‘소확횡’이나 직원 절도 행위도 엄연한 처벌 대상이다. 용서는 교회가, 처벌은 국가가 해야 한다. 피 같은 국민 세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철저하고 투명하게 알고 싶다. 공금으로 구입한 물품은 공직이 끝나면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것이 원칙이고, 염치이며, 상식이다. 이런 원칙과 염치와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다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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