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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치명적인 부산의 미래(조선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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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23-12-18 10:12 조회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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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치명적인 부산의 미래

65세 이상 인구 22.5% 초고령화 1着 도시… 10년간 10만명 청년 유출
베이비부머 유치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실버 수도’ 되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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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가 실시된 29일 새벽 부산 동구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성공 유치 시민응원전에서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자 시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3.11.29/뉴스1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가 실시된 29일 새벽 부산 동구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성공 유치 시민응원전에서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자 시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3.11.29/뉴스1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부산이 가라앉았다. 2025년 엑스포가 아시아(일본)에서 열리는 데다, ‘비전 2030′ 에 총력전을 펴는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와의 경쟁이어서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래도 대통령이 뛰고 대기업 총수들이 가세해 기대치가 부풀었는데 저조한 득표에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부산이 2030 엑스포 유치나 가덕도 신공항 건설 같은 ‘이벤트’에 사활을 거는 것은 경제 상황이 심각한데도 딱히 이를 타개할 생존 전략이 없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 2위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앉게 경제 활력이 계속 떨어져 왔다.

‘저출생 고령화’는 나라 전체 문제이지만 부산에서 유독 심하다. 8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일착으로 초고령화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2.5%에 달한다. 농·산촌이 많은 충북(20.8%)이나 경남(20.5%)보다도 대도시 부산의 고령화율이 더 높다. 광역지자체로는 전남(26%)·경북(24.6%)·전북(24%)·강원(23.9%) 다음이다.

350만명 넘던 인구가 줄어 330만명도 붕괴됐다. 지난 10년간 청년(19~34세) 인구 10만명이 빠져나갔는데 그중 80%가 수도권으로 갔다. 한 여론 조사에서 20대 청년 절반(48.5%)이 부산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1위 항만도시이지만 70년대 제조업 기반이 붕괴된 후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다. 서비스업 비중이 경제의 74%를 차지한다. ‘부·울·경’ 광역경제권 얘기가 나오는데 부산 스스로의 성장 전략이나 비전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인구 추계에 기반한 부산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 감소기에 들어섰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고 비수도권이 인구를 뺏기는 모양새다. 초·중·고 학령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2020년 무렵 49.4%였는데 2040년 52.8%로 더 높아진다는 추산도 있다. 대치동 학원 찾아 상경하고, ‘인서울’ 대학 진학하고, 일자리 찾아 서울로 오니 수도권이 청년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막을 묘안은 부산뿐 아니라 어떤 다른 지역도 내기가 쉽지 않다.

부산이 지금보다 부가가치 높은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엑스포 같은 대형 이벤트가 일시적 호재는 될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끌어주지는 못한다. 지금 와서 제조업 비중을 늘리기도 쉽지 않고, 서울이나 수도권과 경쟁하면서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산업은행이 옮겨간다고 부산이 금융 허브로 발전하기도 요원하다.

그렇다면 일자리 찾아 떠나는 청년 대신 은퇴한 베이비부머 유치로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떤가. ‘인구 쇼크’라는 메가트렌드는 되돌리기 힘든 세계적 추세다. 초고령 사회를 제일 먼저 경험한 부산이 그 메가트렌드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남다른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실버 도시’ 콘셉트로 도시를 재정비하고 대한민국 ‘실버 수도’로 거듭나겠다고 목표를 세운다면 전 세계에 11조달러에 이르는 ‘케어 이코노미(돌봄 경제)’에서 한발 앞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남프랑스 등은 각각 그 나라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우리도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은퇴자 대열에 들어섰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서울보다 주거비가 덜 드는 지역으로 옮기려 한다.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는 인류가 처음 맞는 도전이다.

부산은 대도시 생활에 익숙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노후를 보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바다를 낀 천혜의 경관에, 서울보다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춥다.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겨울에 눈도 안 내려 빙판길 낙상 염려도 적다. 서울보다 집값이나 물가가 싸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48명으로, 서울(3.35명)보다는 적지만 인천(1.76명), 경기(1.69명) 등 수도권보다는 의료 경쟁력이 있다. 전국 40곳 의대 가운데 서울에 8개, 부산에 4개가 있다.

‘실버 수도’라는 비전으로 도시 전체를 개선해 나간다면 엄청나게 선진화된다. 도로, 교통, 주택, 의료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도 노약자 친화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지 않게 꼼꼼히 정비하고, 운전 매너도 훨씬 더 안전하게 바뀌어야 한다. 재택 의료를 선도적으로 실시하면서 국내 의료 규제 개선에도 앞장서야 한다. 대형 병원을 확충하고 노인 질병에 특화된 진료로 차별화해나가야 한다. 새로 짓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고령자 친화적 주거 시설을 갖춰야 한다. 은퇴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의료 휴양도시로 소문나면 일본,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고령자들도 의료 관광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 그러면 일자리도 생겨난다.

청년이 떠나는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자조할 게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의 지혜가 있듯, 먼저 늙어본 도시의 경험을 지혜롭게 풀어내면 엑스포 유치와는 비교도 안 될 지속 가능한 발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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